배우자 한정후견 신청 후기 | 조증 충동소비로 무너지는 가정을 지킨 방법
본 사례는 법무법인 이현이 직접 수임하여 처리한 사건으로, 의뢰인 특정을 방지하기 위해 식별 가능한 정보를 상당 부분 각색하였습니다.
여보, 나 오늘 기분이 너무 좋아
K씨에게 그 한마디는 더 이상 반가운 말이 아니었다.
남편 M씨가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오는 날이면, K씨는 가슴이 먼저 내려앉았다.
“여보! 나 지금 너무 좋은 거 하나 발견했어. 이거 진짜 대박이야.”
“… 또 뭔데.”
“내가 아는 형이 그러는데, 지금 들어가면 무조건 된대. 우리 이거 하면 빚 한 번에 갚아.”
“여보, 지난번에도 그랬잖아.”
“아니 이번엔 진짜 달라. 내가 밤새 알아봤다니까? 느낌이 와.”
전화 너머 목소리는 잠 한숨 못 잔 사람의 것이었다. 새벽 세 시까지 무언가를 검색하고, 표를 그리고, 계획을 세운 목소리.
결혼 후 처음 몇 년은 K씨도 그저 사람이 좀 기분파라고만 생각했다. 활기차고, 통이 크고, 사람들에게 잘 베푸는 남편. 그 성격을 사랑해서 결혼했으니까.
문제는 그 좋은 기분이 멈추질 않을 때 벌어졌다. 한번 들뜨기 시작하면 M씨는 잠을 자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K씨의 휴대폰엔 결제 알림이 떴다.
K씨가 정신을 차렸을 때, 부부의 순자산은 이미 마이너스였다.

(↑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카드를 잘라도 막을 수 없던 이유 — 조증과 충동소비
조울증, 정확히는 양극성 정동장애(bipolar disorder)는 흔히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병' 정도로 가볍게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조증(mania) 삽화(시기)가 찾아온 사람에게 나타나는, 재산 측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증상 중 하나가 바로 판단력 저하와 충동적인 과소비다. (조증의 위험이 과소비뿐인 것은 아니지만, 이 글은 재산 문제에 초점을 둔다.)
병이 만든 자신감 속에서 환자는 스스로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큰돈을 쓰는 데 망설임이 없어지고, 빚을 내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그 순간의 본인에게는 그것이 대담한 투자이고 좋은 기회다. 가족이 보기에는 가산이 무너지는 일인데도.
M씨의 조증기는 보통 며칠에서 몇 주씩 이어졌다. 그 사이에 새 차가 집 앞에 와 있기도 했고, K씨가 알지 못하는 계약서에 그의 서명이 들어가 있기도 했다.
조증이 가라앉으면 M씨는 딴사람이 됐다. 며칠 전까지 세상을 다 가진 듯하던 사람이, 이불 밖으로 나오질 못했다.
“… 내가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K씨가 카드 결제내역을 말없이 내밀면, M씨는 한참을 들여다보다 고개를 떨궜다.
“미안해. 진짜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여보, 지난번에도 그렇게 말했어.”
“이번엔 진짜야. 카드도 다 잘라. 내가 손도 못 대게.”
그 말은 항상 진심이었다. 그래서 K씨도 매번 다시 믿었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가위로 카드를 자르고, 은행 어플을 지웠다. 잠깐은 괜찮은 것 같았다. 다음 조증이 올 때까지는.
몇 주 뒤, K씨는 우연히 알게 됐다. M씨의 이름으로 새 카드가 발급돼 있었고, 모르는 대출이 하나 더 잡혀 있었다.
“이거 뭐야. 카드 안 쓰기로 했잖아.”
“…그냥,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아내가 손쓸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무력해졌다. 성인인 남편이 자기 명의로 한 계약을, 아내가 막을 법적 권한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배우자를 제한하는 죄책감 — 한정후견은 낙인이 아니다
K씨가 법무법인 이현의 문을 두드린 건 남편의 개인 빚이 1억 원을 훌쩍 넘긴 뒤였다. 그녀가 운영하던 작은 가게의 수익으로는 이자조차 감당하기 어려웠다.

상담실에서 K씨는 한참을 망설였다. 그녀가 하려는 일은, 법적으로 남편의 경제활동 능력을 제한해 달라고 국가에 요청하는 것이었다.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을, 제 손으로 혼자서는 큰 계약을 못 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일. 죄책감이 컸다.

담당 변호사는 그 감정부터 짚었다. 한정후견은 사람을 무능력자로 낙인찍는 제도가 아니라, 병이 만든 위험으로부터 그 사람과 가족의 재산을 함께 지키는 보호 장치라는 것.
M씨가 건강할 때 쌓아 올린 것들이 조증기의 몇 주 만에 무너지는 일을 멈추는 것이, 결국 M씨 자신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는 점을 설명했다.
법무법인 이현은 K씨가 청구인이 되어 남편 M씨를 사건본인으로 하는 한정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하기로 했다.
한정후견이란?
질병·장애·노령 등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위해 법원이 후견인을 선임하고, 특정한 법률행위에 대해 후견인의 동의를 유보(留保)하는 범위를 정하는 제도다(민법 제12조·제13조).
M씨처럼 평소에는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고 특정 시기에만 충동이 폭발하는 경우라면, 포괄적으로 권리를 제한하는 성년후견보다 한정후견이 더 알맞다.
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빚은 늘어났다
이 사건의 가장 큰 난관은, 정작 보호받아야 할 당사자인 M씨 본인이었다.
첫째, M씨는 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카드 대출을 받았다.
후견을 신청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를 자극했고, 조증기가 겹치자 재산을 줄이는 행위가 계속됐다. 법원의 결정이 나오기까지의 시간이, 그대로 빚이 불어나는 시간이었다.
절차가 한 달 늦어지면 그만큼 손실이 커지는 싸움이었다.
둘째, M씨는 자신의 상태를 확인할 의료 자료를 만드는 데 협조하지 않았다.
한정후견 개시 여부를 판단할 때 법원은 본인의 정신 상태를 객관적으로 확인하려 하는데, 조증기의 환자는 스스로를 '아무 문제 없는 사람'이라 느끼기 때문에 진료나 검사 자체를 거부하는 일이 잦다. M씨도 그랬다.
법무법인 이현은 두 가지를 동시에 풀어갔다.
한정후견 심판에서는 원칙적으로 법원이 지정하는 정신감정을 거치지만, 여기에는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이 든다. 이현은 사안이 비교적 명백하다는 점을 활용해 정신감정을 철회하는 전략을 택했고, 그 대신 이미 확보된 진료 기록과 카드 이용내역·금융 자료로 정신감정을 갈음했다.
신용카드 이용내역, 대출 내역, 재산목록과 신용정보 조회 결과를 시계열로 정리해, "조증 삽화 시기와 과소비·차용 시점이 겹친다"는 흐름을 법원이 한눈에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다.
감정 절차의 생략은 재판부의 재량에 달린 일이라 모든 사건에 통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자료가 충분할 때 의뢰인의 부담과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길이었다.
그리고 어렵게 설득한 끝에 M씨가 다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게 했다.
진단서에는 단순히 진단명을 적는 데서 그치지 않고, 증상이 심한 시기에는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하며, 단기간에 회복될 가능성이 낮다는, 한정후견 요건에 정확히 들어맞는 내용이 담겼다.
심문기일, 법정에는 K씨와 M씨가 함께 섰다.
재판부는 제출된 자료를 확인한 뒤 M씨에게 직접 물었다. 한정후견 개시에 동의하느냐고. 우울기에 접어들어 있던 M씨는, 조용히 그렇다고 답했다. 자신이 무슨 일을 반복해 왔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결국 본인이었다.
재판부는 개시 요건은 어느 정도 소명되었으나 진단서를 보완해 제출하라고 했고, 법무법인 이현은 협의해 둔 진단서를 추가로 제출했다. 그리고 얼마 뒤, 결정이 나왔다.

한정후견 후기, 후견인이 된 아내
법원은 M씨에 대한 한정후견 개시를 결정하고, 청구인인 아내 K씨를 한정후견인으로 선임했다.
결정의 핵심은 M씨가 후견인의 동의를 받아야만 할 수 있는 행위, 즉 동의가 유보되는 범위를 못 박은 데 있었다.
부동산의 처분·구입과 임대차 계약, 담보권 설정, 금전의 차용·대여·증여, 보증, 그리고 신용카드 개설과 통신·물품 구매 계약까지.
그동안 M씨가 조증기에 반복했던 바로 그 행위들이다. 이제 M씨가 이 행위를 아내의 동의 없이 하면, 후견인인 K씨가 그 계약을 취소할 수 있게 됐다.
계약이 자동으로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후견인이 취소권을 행사하면 효력을 되돌릴 수 있다. 다만 생필품 구입처럼 일상생활에 필요하고 대가가 과도하지 않은 거래까지 막는 것은 아니어서, M씨의 평범한 일상은 그대로 유지된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점. 한정후견의 효력은 결정이 난 뒤부터(장래효) 작동한다.
이미 M씨가 건강한 성인으로서 맺어 1억 원 넘게 쌓인 과거의 빚을 한정후견으로 소급해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채무는 부부가 따로 풀어가야 할 과제로 남는다.
한정후견이 해 준 일은, 앞으로 늘어날 빚을 원천에서 차단하는 방패를 K씨의 손에 쥐여 준 것이다. 끝없이 새던 둑을 막은 셈이다.
동시에 법원은 M씨의 자기결정권도 지켰다. 의료행위에 대한 동의, 거주·이전, 우편·통신, 사회복지서비스의 신청 같은 신상에 관한 사항은 M씨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한 본인의 뜻을 따르도록 했다.
후견인은 본인이 스스로 정할 수 없을 때에만 개입한다. 한정후견이 통제가 아니라 보호라는 점이 결정문에 그대로 담긴 셈이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후견인이 된 K씨에게 재산목록을 작성해 제출하고, 매년 후견사무 보고서를 내도록 명령했다. 후견인이 후견 재산을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지 법원이 지켜보겠다는 뜻이다.
번거로운 일이지만, K씨에게는 그 번거로움이 오히려 안심이었다. 더 이상 어느 날 갑자기 통장이 비는 일을,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수임에서 결정까지는 1년이 훌쩍 넘게 걸렸다. 본인의 비협조와 진행 중에도 이어진 재산 감소라는, 결코 수월하지 않은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사건을 끝까지 끌고 가 인용 결정을 받아낸 것은, 수많은 자료들 사이에서 '조증과 소비의 인과'라는 하나의 그림을 끈질기게 맞춰낸 결과였다.
비슷한 상황이라면.. 한정후견 신청 전 알아둘 것
가족이 조울증, 도박, 알코올 의존, 또는 인지능력 저하로 재산을 반복해서 잃고 있다면, 그리고 그 가족이 성인이라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 K씨의 이야기는 남의 일이 아니다.
기억할 점 몇 가지를 정리한다.
한정후견은 낙인이 아니라 보호다.
본인의 자기결정권은 최대한 남기고, 위험한 영역에만 후견인의 동의를 거치게 하는 제도다. 동의 없이 한 계약은 후견인이 취소할 수 있되, 생필품 구입 같은 일상 거래까지 막지는 않는다.
앞으로의 빚을 막는 방패이지, 과거를 지우는 도구는 아니다.
한정후견의 효력은 결정 이후부터 작동한다. 이미 발생한 채무를 소급해 없애 주지는 않으므로, 늦기 전에 시작할수록 지킬 수 있는 것이 많다.
증거는 시점이 중요하다.
진단 기록과 함께, 증상 시기와 과소비·차용 시점이 겹친다는 점을 자료로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다. 카드 이용내역, 대출·금융 조회 자료를 평소에 모아두면 큰 힘이 된다.
본인이 비협조적이어도 길은 있다.
진단·검사를 거부하거나 진행 중에도 재산을 줄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때 절차 설계와 자료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시간이 곧 손실인 사건이다.
결정이 늦어질수록 빚이 늘어나는 구조라면, 절차를 빠르고 정확하게 진행하는 것 자체가 재산을 지키는 일이다.
조울증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다. M씨 역시 지금도 꾸준히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일과, 그 사람으로부터 가족을 지키는 일은 충돌하지 않는다. 한정후견은 그 두 가지를 잡을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배우자 한정후견인 FAQ
배우자가 조울증으로 재산을 탕진하는데, 한정후견을 신청할 수 있나요?
네. 질병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해진 배우자에 대해 가족이 청구인이 되어 가정법원에 한정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조울증처럼 증상 시기에만 판단력이 흔들리는 경우, 포괄적으로 제한하는 성년후견보다 특정 행위만 동의를 유보하는 한정후견이 적합한 경우가 많습니다.
한정후견을 받으면 이미 생긴 빚도 없어지나요?
아닙니다. 한정후견의 효력은 결정 이후부터(장래효) 작동하므로, 결정 전에 본인이 정상적으로 맺은 계약이나 이미 생긴 채무를 소급해 무효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한정후견은 '앞으로 발생할' 무분별한 계약과 빚을 막는 장치입니다.
본인이 병원에 가지 않으려 하거나 절차에 협조하지 않으면 불가능한가요?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정신감정 대신 기존 진료 기록과 금융·소비 자료로 상태를 소명하는 등, 사안에 맞는 자료 구성과 절차 설계로 풀어가는 것이 변호인의 역할입니다.
본 글은 법무법인 이현이 실제 수임·처리한 사건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법적 결과는 개별 사안의 구체적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본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으로 특정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